장기적 다수 이익 지켜야 좋은 정책
단기적 인기 챙기려는 나쁜 정책
구분하는 능력 가져야 ‘민주 시민’
선거철이 왔는지는 단박에 알 수 있다. 국가 정책과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지면 선거철이 온 것이다. 해당 뉴스의 발원지는 잠재적 후보들이다. 이들은 여러 매체와 방식을 통해 정책의 성찬을 차려 낸다. 당장 내 삶에 영향을 미칠 법한 솔깃한 내용들도 많다. 하지만 솔깃한 정책이 나 외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로울까. 그 주장이 과연 장기적으로도 이로울까. 달달한 정책의 사회 전반적 효과는 또 어떠할까.오래전 이런 물음들에 대해 고민했던 인물이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헨리 해즐릿이다. 그는 1946년 출간한 ‘보이는 경제학, 안 보이는 경제학’에서 경제학자 식별법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나쁜 경제학자는 정책의 눈에 보이는 효과, 단기적 직접적 결과,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고려한다. 반면 좋은 경제학자는 보이지 않는 부작용, 장기적·간접적인 결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균형 있게 분석한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통찰은 오늘날의 정책 평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해즐릿의 주장을 더 들어 보자. 대부분의 정책은 수혜자와 피해자를 만든다. 어떤 정책은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지만 어떤 정책은 다른 모든 집단을 희생시켜 특정 집단에게만 이익을 몰아준다. 이때 1차 수혜 집단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 그럴듯한 논리로 해당 정책을 정당화한다. 일반 대중은 전문가에게 압도돼 쉽게 설득당한다. 여론의 쏠림현상이 일어나 해당 정책이 힘을 얻는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이 가세해 나쁜 정책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2023년 11월 금융위가 의결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정책은 나쁜 정책의 전형이다. 해즐릿이 말한 나쁜 정책의 3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단기적 주가 상승이라는 가시적 효과를 가져왔다. 둘째 공매도 관련 비판과 민원이 사라지는 직접적 결과를 얻었다. 셋째 단기매매에 집중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좋은 정책의 조건인 ‘안 보이며,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주가에 인위적 거품을 만들고,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적 신뢰도를 훼손하며, 궁극적으로 가격의 더 큰 변동성을 초래할 것이다.
인기와 표를 얻기 위한 정책들은 대개 침묵하는 다수보다 목소리 큰 소수에게 영합한다. 또한 나쁜 정책의 3요소를 두루 갖춘다. 만일 이것이 채택되면 해당 집단의 잘못된 행동들은 더욱 강화된다. 공매도가 금지됨으로써 가격 발견 기능이 왜곡되고, 부실기업 주가에 거품이 잔뜩 끼면 투기적 행태는 더욱 강화된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 발전을 저해하고 한국경제 전반에 부정적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해즐릿의 관점에서 보면 도널드 트럼프의 보편 관세도 나쁜 정책이다. 1차 효과는 보호받는 특정 산업에서 발생한다. 예컨대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해당 섹터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인다. 실제로 2018년 트럼프 1기 당시 철강업체들의 수익성이 개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기적 ‘보이는 효과’일 뿐이었다. 2차 효과는 그것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자동차, 항공, 건설업 등의 원가 상승이었다. 3차 효과는 보다 광범위했다. 앞선 미국 기업들이 원자재 및 부품 비용 상승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했다.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이른바 ‘정치꾼’ 감별법도 세 가지다. 인기영합적인지, 해당 정책의 비용과 간접적 부작용이 간과되는지, 무엇보다 지엽말단적 성격을 띠면 정치꾼일 가능성이 높다. 해즐릿의 통찰은 오늘날 더욱 빛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표면적 현상과 이면의 장기적 본질을 구분할 줄 아는 안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 인기를 위한 포퓰리즘이 아닌,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는 균형 잡힌 정책을 지지할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보이는 나쁜 정책’과 ‘안 보이는 좋은 정책’을 구분하는 능력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기본 덕목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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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2025-02-21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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