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삭제 프로그램인 WPM으로 디지털자료 싹 지워
검찰 수사를 받는 롯데그룹이 압수수색 전에 컴퓨터 자료 증거인멸을 위해 전문 삭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15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조재빈·손영배 부장검사)은 전날 롯데그룹 10개 주요 계열사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롯데건설이 전문 삭제 프로그램 ‘WPM’(Wipe Manager)을 동원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롯데 측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내 전자문서들을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삭제해버렸다.
검찰은 컴퓨터에 해당 프로그램이 사용된 흔적과 관련자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도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 프로그램이다.
IT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WPM은 삭제한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도록 새로운 정보를 덮어쓰는 ‘와이핑(Wiping)’ 기능을 이용한 완전 삭제 프로그램이다. 쉽게 말해 ‘삭제하기 + 덮어쓰기’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윈도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PC에서 자료를 삭제하기 위해선 해당 자료를 ‘휴지통’이란 특수 폴더로 옮긴다.
이때 실제 자료는 저장장치에 그대로 남아있고, 자료의 위치에 대한 기록만 지워지기 때문에 삭제를 했더라도 원칙적으로 복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WPM을 사용하면 자료를 삭제한 뒤 원래 위치에 있는 자료에 새로운 데이터를 덮어쓰기 때문에 복구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덮어쓰는 새 데이터로는 숫자 ‘0’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자료는 삭제되고 거기에다 덮어쓰기를 해서 ‘0000…’ 식의 자료만 남게 된다.
흔히 완전한 자료 삭제 방법으로 알려진 ‘디가우징’은 물리적인 방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WPM과 차이가 있다. 단순화하면 ‘하드웨어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디가우징은 하드디스크 외부에 강력한 자기장을 가해 내부 데이터를 훼손한다. 선별적인 자료 삭제는 불가능하다. 모든 걸 다 지워버린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증거인멸을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롯데가 사용한 WPM은 기존 데이터를 지우고 다른 내용을 덮어쓰는 식으로 자료를 증발시킨다는 점에서 좀 더 진화한 기법이며 ‘소프트웨어적 방식’이다.
이 밖에도 롯데그룹은 사무실 책상 서랍과 금고를 비우고, 차량을 동원해 관련 서류와 문서를 빼돌리는 등 증거인멸·은폐 행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검찰에서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의 본말이 전도될 수 있어 증거인멸 수사에 먼저 나서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증거인멸로 입건할 분들이 사실 제법 있다”며 차후 강력히 대응할 방침을 내비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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