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합의 전제 특검ㆍ국정원특위 수용 시사…선진화법 장벽 감안한듯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민주당의 국가기관 선거개입 특검제 도입과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 주장에 대해 여야간 합의를 전제로 했지만 수용을 시사한 것은 내년도 예산안과 민생ㆍ경제활성화 법안 통과에 대한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두 사안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포함해 무엇이든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서 합의점을 찾아주신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국회에서 여야 간에 합의해주신다면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애초 지난달 31일 수석비서관 회의 당시 발언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이 특검제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특위 구성에 대해서는 “국회가 할 일”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데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던 것에 비해 외견상으로는 한 발짝 더 나아간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가 두 사안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정기국회가 파행하고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우려까지 나올 정도로 정국이 꼬인 상황에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경색 정국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자처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밑거름이 되는 내년도 예산안 통과를 위해 야당에 일정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정치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정국의 분수령으로 지목돼온 이날 시정연설에서조차 야당의 국가기관 선거개입 특검요구에 대해 기존의 거부입장을 고수할 경우 내년도 예산안의 정상처리가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감사원장 인준안 처리 등을 놓고도 여야가 물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국정운영이 차질을 빚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해석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시정연설 대부분에서 강조한 것은 ‘경제부흥ㆍ국민행복ㆍ문화융성ㆍ평화통일 기반구축’ 등 4대 국정기조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이 편성된 만큼 예산안이 최대한 원안대로 신속히 통과되는 것이 원활한 국정운영에 필수적이라는 점이었다.
박 대통령이 연설 초반 “우리도 지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금 세계는 서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다. 지금 우리도 다시 출발점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도 예산안의 원활한 통과에 대한 강한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국회 선진화법 하에서는 여당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야당에 일종의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은 이런 ‘현실적 장벽’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박 대통령은 그동안 야당과의 ‘소통 부재’ 지적을 염두에 둔 듯 “국회를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 매년 정기국회 때마다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며 의원여러분들의 협조를 구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겠다”며 “저와 정부는 의원 여러분들의 지적과 조언에 항상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만큼 이제 공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록 박 대통령이 ‘공을 떠넘긴’ 측면이 강하지만 어쨌든 경색된 정치권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으로 해석될 발언을 한 만큼, 새누리당이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얼마만큼 정치력을 발휘해 정국 파행을 막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만약 새누리당이 여전히 민주당이 주장하는 특검이나 특위 부분에서 기존의 입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당장 민주당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연말정국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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