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주머니 속 몽당연필/박찬구 논설위원

[길섶에서] 주머니 속 몽당연필/박찬구 논설위원

입력 2014-07-02 00:00
수정 2014-07-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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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을 잃어버렸다. 새끼손가락에서 손톱 하나 더한 길이의 몸피다. 뒤지고 훑어도 헛일이다. ‘오호통재(痛哉)라’까지는 아니어도 저리고 짠한 상실감은 어쩔 도리가 없다.

‘너’는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손바닥만 한 스프링 수첩과 단짝이었다. 검은 스프링들이 만든 반원형의 공간 속에 머문 지 반년이 넘었다. 느닷없는 ‘너’의 부재로 수첩은 생뚱맞은 객(客)의 처지가 돼 버렸다.

한적한 샛길을 걸을 때나, 비좁은 전철에서 앉아가는 호사를 누릴 때나, 나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들어앉은 몽당연필은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단상을 수첩에 옮기곤 했다. 글이 직업인지라 기록은 문장이 되고 글감이 되고 주제가 됐다. 명징하지 못한 의식이 비뚤어지게나마 온전할 수 있었다. 40쪽이 넘도록 수첩에 손때를 남기는 사이 갈색 연필의 표면은 낡고 바랬다.

하릴없다. 필통에 들어 있는 다른 연필을 만지작거린다. 어색하지만 다시 정을 붙일 수밖에…. 그리 마음먹고도 기억은 낯을 가린다. 뜸을 들이며 뒤를 돌아본다. 그는 언제쯤 ‘너’가 될 수 있을까.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2014-07-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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